어느 날 내가 좋아하는 미드 '하우스 (House M.D)'를 다시 보다가 예전에는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겼던, 저 대사 '걔들보단 고도가 빨리 올걸요.'의 컨텍스트가 궁금해졌다. 뉘앙스는 '쟤들은 매우 늦을 것이다.'를 의미한다는 것을 굳이 '고도’가 누군지 몰라도 이해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래서, '고도’는 누군데?
저 대사에 등장하는 '고도’가 궁금해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찾아서 읽었다. 매우 얇지만, 금방 읽히지는 않았다. 일단, 소설이 아니다. '햄릿’과 같이 자주 접하지 않았던 아래와 같은 형식의 희곡이다.
침묵. 둘이 다 움직이지 않고 서 있다. 두 팔은 흔들거리고 고개를 푹 숙인 채 무릎에는 맥이 빠졌다.
에스트라공 (힘없이) 우린 꽁꽁 묶여 있는 게 아닐까? (사이) 안 그래?
블라디미르 (손을 들며) 쉿! 무슨 소리가 난다!
그들은 우스꽝스럽게 굳은 자세로 귀를 기울인다.
읽다 보면, 응? 하면서 잠시 멈추게 되는 부분이 많다.
그중에서 가장 직접적인 예를 들면, 이 연극의 대사 중에 '제가 무슨 주피터의 아들 아틀라스라도 된 것처럼 말이지!'라는 대사가 있는데 아틀라스는 주피터의 아들이 아니다. 작가가 이를 몰랐을 리는 없고, 분명 의도를 가지고 서술했을 테니 읽으면서 등장인물의 대사와 행동에서 작가가 한번 비튼 비유나 의미에 대해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시간에 대해, 관계에 대해, 삶에 대해, 고도에 대해, 읽는 사람마다 각자의 해석이 있을 테고 느끼는 재미가 다를 것이다.
나는 나의 고도를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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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떨쳐버리려고 오랫동안 속으로 타일러 왔지. ‘블라디미르, 정신 차려, 아직 다 해본 건 아니잖아’ 하면서 말이야. 그래서 싸움을 다시 계속해 왔단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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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발이 잘못됐는데도 구두 탓만 하니. 그게 바로 인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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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어떻게 됐길래 복음서를 쓴 네 사람 중 단 하나만이 그때의 상황을 그런 식으로 전하게 됐는지 모르겠단 말이야. 네 사람이 다 그 자리에 있었을 텐데. 어쨌든 거기서 멀지 않은 곳에 있었을 텐데 말이지. 그런데 그중 한 사람만이 구원받은 도둑놈 얘기를 써 놓았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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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의 눈물의 양엔 변함이 없지. 어디선가 누가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면 한쪽에선 눈물을 거두는 사람이 있으니 말이오. 웃음도 마찬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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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없으니 서운하기도 하고 한편으론 좋기도 하더라. 이상하지 않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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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 생각난다. 어제저녁에 우린 구두 얘기를 했지. 그 얘기를 해온 지가 오십 년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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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모두 미치광이로 태어나는 거다. 그중에는 끝내 미치광이로 끝나는 자들도 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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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오늘 이 긴 하루를 헛되게 보낸 건 아니오. 그래서 오늘의 일과도 이제 다 끝나간다는 걸 자신있게 말할 수 있는 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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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시간 얘기를 자꾸 꺼내서 사람을 괴롭히지 좀 말아요! 말끝마다 언제 언제 하고 물어대다니! 당신, 정신 나간 사람 아니야? 그냥 어느 날이라고만 하면 됐지. 여느 날과 같은 어느 날 저놈은 벙어리가 되고 난 장님이 된 거요. 그리고 어느 날엔가는 우리는 귀머거리가 될 테고. 어느 날 우리는 태어났고, 어느 날 우리는 죽을 거요. 어느 같은 날 같은 순간에 말이오. 그만하면 된 것 아니냔 말이오? (더욱 침착해지며) 여자들은 무덤 위에 걸터앉아 아이를 낳는 거지. 해가 잠깐 비추다간 곧 다시 밤이 오는 거요. (그는 끈을 잡아당긴다.)
고도를 기다리며 | 사무엘 베케트, 오증자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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