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어, 많이 들어봤지만 생소한 언어를 주제로 작가의 경험과 생각을 풀어놓고 있다. 라틴어를 배경으로 놓고 이야기를 전개하지만 이야기를 진행하는 도구일 뿐, 라틴어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에세이로 분류된 이 책은 읽다 보면 자기계발서를 읽는 기분이 들지만, 기분 탓이다.
아무래도 종교적인 색채를 가지고는 있지만 그렇게 강하지는 않다. 언어에 대한 이야기, 로마에 대한 이야기, 삶에 대한 이야기가 생각할 거리를 여럿 던져준다. 여러 문장에 밑줄을 그으면서 읽었지만, 빵 터진 문장이 있었다.
로마 생활은 저에게 욕의 필요성을 일깨워주었습니다. 로마는 혼잣말로 욕이라도 하고 나면 마음이 한결 편해진다는 것을 깨닫게 해준 곳이었어요. 욕에 이런 순기능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라틴어 수업 | 한동일 저
어디선가 보았던 문장인데 책에서 다시 만나 반가웠다.
내가 이 세상 도처에서 쉴 곳을 찾아보았으되, 마침내 찾아낸, 책이 있는 구석방보다 더 나은 곳은 없더라.-토마스 아 켐피스(Thomas à Kempis, 1380~1471), 독일의 수도자이자 종교사상가
아쉬운 것은 책 분량이 부족했는지 후반부는 저자의 제자들이 쓴 찬사 어린 편지가 제법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굳이 넣지 않아도 좋았을 불필요한 분량이라고 생각한다.
리디북스 : 라틴어 수업
#독서 #에세이 #라틴어수업
Non tam praeclarum est scire Latinum quam turpe nescire.
논 탐 프래클라룸 에스트 쉬레 라티눔 쾀 투르페 네쉬레.
라틴어를 모르는 것이 추하지 않은 만큼 라틴어를 아는 것도 고상하지 않다.
라틴어 수업 | 한동일 저
언어는 사고의 틀입니다. 상대에 대한 존중과 배려, 수평성을 가지고 있는 라틴어가 로마인들의 사고와 태도의 근간이 되었을 겁니다.
라틴어 수업 | 한동일 저
겸손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정확히 아는 것입니다.
라틴어 수업 | 한동일 저
사실 인생은 자신의 뜻이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갈 때가 많습니다. 주변에서 끊임없이 무슨 일이 일어나고 그중 많은 문제가 우리를 괴롭히죠. 우리가 살아가는 동안 아마도 계속 그럴 겁니다. 우리가 통제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니 그것은 그것이고 나는 내가 할 일을 한다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라틴어 수업 | 한동일 저
어느 시점부터 세속의 권위보다 교회의 권위가 훨씬 막강해집니다. 그래서 교회 권력은 교육, 의료 등 거의 모든 사회 분야에 영향을 끼치게 되죠. 그러다가 어느 순간 시민들이 등장해 교회가 가지고 있던 교육 및 오늘날의 사회복지 개념을 시민사회에서 구현하겠다고 주장합니다. 여기에서 오늘날 대부분의 국가가 향유하는 공교육이라는 개념이 나왔습니다. 이를 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교회가 기존에 향유했던 것을 세상이 가져간 것이므로 세속주의라고 부르게 된 것이고요. 이 이론의 바탕이 되는 성경 구절이 바로 “캐사르의 것은 캐사르에게, 신의 것은 신에게”입니다.
라틴어 수업 | 한동일 저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지만 그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의 규정을 교리로 가르치며 나를 헛되이 섬긴다. 너희는 신의 계명을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는 것이다(「마르코」 7: 7-8)”라는 탄식이 우리 시대에도 똑같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라틴어 수업 | 한동일 저
초기의 인류는 삶의 가치와 의미를 신神적인 것에서부터 ‘유추analogia’하려고 했던 것이죠. 신이 인간을 필요로 한 것이 아니라, 인간이 신을 필요로 했다는 말입니다.* 여기에서 ‘만들어진 신’이라는 개념이 등장하게 됩니다.
라틴어 수업 | 한동일 저
호라티우스의 ‘오늘을 즐겨라’라는 의미도 당장 눈앞의 것만 챙기고 감각적인 즐거움에 의존하여 살라는 뜻이 아닙니다. 매 순간 충만한 생의 의미를 느끼면서 살아가라는 경구입니다.
라틴어 수업 | 한동일 저
우리 사회는 어떤 한 개인이 윤리적으로 잘 살고 싶어도 살기 힘든 그런 사회가 되어버렸습니다. 불법을 부추기고 합법엔 인내를 발휘해야 합니다. 정직하고 바르게 살면 무능한 것이고 약삭빠르고 초법적으로 살면 능력 있다는 소리를 듣습니다.
라틴어 수업 | 한동일 저
Tantum vemus quantum scimus.
탄툼 비데무스 콴툼 쉬무스.
우리가 아는 만큼, 그만큼 본다.
라틴어 수업 | 한동일 저
라틴어가 능동 명령을 사용하지 않고 수동 명령을 사용하는 것은 진리는 진리 그 자체이기 때문에 고개를 숙이는 것이지, 외부의 힘에 의해 고개를 숙이는 것은 진리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즉 강압에 못 이겨 순종하는 진리는 이미 진리가 아니라는 의미인 것이죠.
라틴어 수업 | 한동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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